[김동엽의 스마트에이징 : 가족과 함께 살면 행복할까??3부]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쳐도 가족이 함께 하면 헤쳐 나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 시사 주간지 ‘아에라(AREA)’는 2010년 8월 “가족이 함께 살면 행복하다는 새빨간 거짓말’ 이라는 특집기사 에서, “사람들은 흔히 가족이 한 지붕아래 사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며, “사랑과 화목이 유지되는 가정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돈’에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자는 연금이 끊기거나 통장이 바닥나면 가족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데다, 심할 경우 돈 없는 늙은이는 가족들 사이에 서로 부양을 미루는 골치덩이가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집기사에서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고령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받고 안 받고는 돈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달렸다”며 부모자녀 관계를 재산 정도에 따라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 유형은 ‘사랑 받는 노인’이다. 부모와 자식 모두 재산이 많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부모로선 연금과 저축으로 노후에 대비해왔으니 여차하면 유료 노인부양시설에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자녀도 부모를 부양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상당히 돈독하다. 두 번째 유형은 고령인 부모는 돈도 많고 연금도 많이 받는데 반해, 자녀는 변변한 직업도 모아둔 돈도 없는 경우다. 다 큰 자녀가 부모님의 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경우로 앞서 말한 ‘연금 패러사이트’가 여기 해당한다. 세 번째 유형은 부모는 돈이 없고 자녀는 돈이 많은 경우다. 고령자는 연금이 끊기거나 통장이 바닥나면 가족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데, 심할 경우 돈 없는 늙은이는 가족들 사이에 ‘서로 부양을 미루는 골치덩이’가 되기 일쑤다. 이 경우 자녀와 떨어져 사는 부모가 많은데, 이때 노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남은 한 사람은 ‘홀몸노인’으로 남게 된다. 마지막 유형은 부모와 자녀 모두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경우다. 부모-자녀가 모두 경제적으로 쪼들리다 보니 관계가 소원해지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 결국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행방을 감춘 부모는 ‘무연사(無緣死) 예비군’이 된다. 무연사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사망해 나중에 발견되는 경우로 고독사(孤獨死) 또는 고립사(孤立死)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찌되었던 자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모는 저축이나 연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들뿐이다. 반대로 말해 돈 없는 고령자들은 자식들과 친척들로 사랑 받기 힘들다는 얘기다. 돈이 떨어질 때가 자녀들과 연(緣)이 끊기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있듯이 과거에는 자식들을 위해 부모들은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도 부모를 위해 그럴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적정성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가구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기준(1인 가구 기준 월53만원)이하이면서 법적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대상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의 부양의무자 중 재산과 소득이 많은 10만 4000명을 중점확인대상자로 지정하고 수급자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했는데, 이들 중 42%에 해당하는 4만3000명이 ‘자녀와 가족관계 단절되었다’고 적극적으로 소명해 수급자격을 유지했다고 한다.
물론 자녀들 중 형편이 안되 부모를 모신다고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정수급자 중에는, 부양의무자 월 소득이 500만원을 넘는 수급자가 5,496명이나 있었고, 월 소득이 1000만원을 넘는 경우도 495명이나 됐다. 심지어 딸과 사위의 월 소득이 4,000만원이 넘고, 재산이 179억 원이나 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만약 이들이 부모를 봉양하면서 단지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서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소득을 누락했다면, 부정하게 받은 수급금을 돌려주고 법적 제재를 받으면 그 뿐이다. 하지만 돈 많은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아 부모가 부정수급자가 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만약 사정이 그렇다면 부모들은 잘난 자식을 둔 덕분에 정부지원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을 당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무자식이 상팔자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복건복지부의 조사가 부정 수급자를 밝혀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모자식간의 소원해진 관계까지 회복해 줄 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처럼 돈으로 가족관계가 좌우되는 것은 고령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자녀에게 무조건 베풀고 봉양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 고령자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정신과의사인 와다 히데키(和田 秀樹) 정신과 의사는 “혼자 사니까 불행하고 가족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는 사회 통념이 바뀌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는 부모를 골치덩이 취급하는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스스로 혼자 사는 고령자가 갈수록 늘어갈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30~40대에게 필요한 것은 나중에 자신들이 늙어서도 혼자 살수 있도록 지금부터 철저하게 자산관리 하는 것이다”고 했다.
김동엽님은 은퇴설계 전문가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 FP센터, 미래에셋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장과 투자교육 팀장, 한국FP학회 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