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自尊)’의 길, ‘자비(自婢)’의 길 part 5

  • 이병권의 매국우파론 5부:  뉴라이트의 허망한 전쟁 시나리오 분석 part 2

<4부에 이어…>

전쟁이라는 진부한 생존협박

2024년 현재 한국 사회는 뉴라이트라는 신종 ’사대주의(事大主義)‘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원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약자의 생존법은 강자의 힘에 기대어 생존법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고구려와 같이 중국의 대국들과 맞서 싸울 역량이 있다면 과감히 쟁투할 일이지만, 국가의 위세가 그만 못하다면, 적당히 조공도 바치고, 허리도 굽혀 예를 표하기도 합니다. 고려의 8대 국왕 현종(992~1031)은 가장 현명한 사대(事大)를 한 황제로 꼽힙니다. 현종은 당시 동북아 최강국이었던 거란(요나라)과 25년간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993~1018)의 최종 승자가 되었음에도 거란은 물론, 송나라와도 사대의 예를 표하며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건실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중립외교를 취하며 친선교류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이후 고려는 몽골의 침략 이전까지 약 110여년간 최전성기를 구가합니다.

‘사대(事大)’ 문제의 핵심은 사대하는 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선택한 수단으로 선택한 수단이자 도구로써 사대를 활용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정체성 상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예는 정체성도, 선택권도, 스스로 성장할 길도 허용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당연히 생사여탈권은 노예의 주인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가를 식민지라 부릅니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제국의 정체성은 오로지 식민지를 수탈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유지됩니다. 제국주의입니다. 다행히도 우리의 선조들은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기반으로 삶을 유지하며 주체적 ’생존‘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 왔습니다. 필자는 앞서 예시한 <경신환국, 1680)> 이후 노론의 성리학이 체제를 지키는 종교가 되고, 그들의 사대주의가 신앙이 되면서부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판단합니다. 이들 노론 집단이 조선의 패망을 이끌었고, 식민지 조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식민사관>의 앞잡이가 됩니다. <조선사편수회>의 이병도나 신석호가 그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없지만, 그들의 후예들이 ’뉴라이트(New Right)’라는 탈을 쓰고 ’노예의 찬가’를 부릅니다. 그 찬가의 내용이 바로 안병직, 이영훈 등이 가사를 쓴 <식민지근대화론>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다시 ’노예의 길’을 보입니다. 이 ’노예의 길’을 어떤 논리로 포장하여 우리 시민들을 협박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첫째, ’예정된 전쟁이라는 시라이오

1980년대 후반, 동유럽과 소련의 몰락은 냉전체제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극 체제로 변모시킵니다. 체제 경쟁이라는 브레이크를 잃은 자본 만능주의,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를 강타합니다. 세계를 WTO 체제로 묶고, 시카고 보이즈 들은 자본의 무한 자유 이동과 증식을 옹호하면서 남미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초토화하고 과실을 빨아들이게 됩니다. 그 와중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고, 2010년 드디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합니다.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은 미국과 서구 유럽국가들을 긴장하게 합니다. 제국은 협력자는 용납하지만, 경쟁자의 도전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군산 복합경제 체제는 바로 그 경쟁국을 상대로 더 많은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Grahme Alison, 1940~ )의 대표저작으로 꼽히는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출간되어 현재까지 미국과 중국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매파 정치학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전 대통령에게 중국을 강력히 봉쇄해야 하는 명분을 제공한 프로파게인터의 도구로 활용되었고,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매국 우파)들의 한/미/일 동맹의 이론적 출발점으로 간주합니다. 엘리슨은 지난 500년간 지구상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15개를 분석하면서, 대부분의 이 전쟁들은 최강국의 지배권에 도전하는 강력한 도전자는 필연적으로 피할 수 없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이는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엘리슨은 미국과 중국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대치하며 긴장도를 높이고 있어서 언제일지는 몰라도 전쟁은 필연적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합니다. 엘리슨은 한국에도 수차례 방문한 바 있는데, 한국은 미국의 편에 바짝 붙어 서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네오콘과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다양한 전쟁 시나리오를 양산해오고 있습니다.

둘째, ’투키디데서의 함정은 필연적인가?

그레이엄 엘리슨의 이 책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로, 페르시아 전쟁 이후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 부상한 아테네와 기존의 최강국이었던 스파르타와의 전쟁 과정과 결과까지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여기서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할 때 극심한 구조적 긴장과 갈등이 빚어지며 결국엔 전쟁으로 귀결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쟁은 ’결국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다고 엘리슨은 분석합니다. 엘리슨은 이 양 경쟁자는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고 도덕적 책무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그는 결국 미국과 중국은 전 방면에 걸친 주도권 다툼의 결과 상호 원치 않더라도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엘리슨의 이러한 분석과 예상 시나리오는 현실의 세계질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세계질서 자체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서 다자체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지구상에서 2곳 이상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만큼의 정치,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세계 각 국은 이념이나 진영 중심의 정치적 이유 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 합니다. 미국의 강력한 우방인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은 수시로 중국을 방문하고 각 국의 이해관계 증진에 골몰합니다. 심지어 당사자인 미국조차 세계의 공장이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엄포를 놓고, 관세를 높이고, 봉쇄를 천명하지만, 뒤로는 자국의 이익에 필요한 경제협상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인도/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멕시코 등 개발도상국 연합체)’ 진영은 과거 비동맹권의 전통을 이어가며 세계 정치와 경제의 균형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 ’글로벌 사우스‘에 공을 들이며 이들과의 관계증진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을 견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이 미국과 1위 쟁탈전을 벌일 의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1, 2위 간의 서열정리와 공존을 통한 상호발전의 길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의 문제인데, 긴장과 갈등 속에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제관계이고 보면, 이러한 긴장관계가 곧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장될 이유는 매우 적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국제 갈등과 전쟁으로 먹고사는 미국 군산복합체들의 도발적 판단과 역할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생산과 소비, 수출과 내수 모두에서 상호 깊이 의존관계에 접어들어 있습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필요악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그 함정이 현실화하길 염원하는 자들의 희망이자 환상은 아닌지, 그러한 위기론 속에서 취할 이익에 그 진정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지 주목해야 합니다.

<6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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