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賊反荷杖)의 적(賊)은 누구?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4.환(煥)]

멀리 돌아갈 것 없다. 이 ‘적’이라는 글자는 도적(盜賊)을 가리킨다. 남의 물건과 재산 등을 몰래 훔치거나 강제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일삼는 사람이다. 이 도적은 몽둥이로 때려서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그 도적이 큰 소리 치며 몽둥이 휘두르면 ‘적반하장’이다. 도적놈(賊)이 오히려(反) 몽둥이(杖)를 들고(荷) 있음을 말하는 우리 식 성어다.

적반하장에 조응하는 중국 식 성어는 “도적놈이 ‘도둑 잡아라’고 소리를 치는” 경우다. 한자로는 ‘賊喊捉賊(zei h?n zhu? zei)’이라고 적는다.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경우는 자주 생겼던 모양이다. ‘방귀 뀐 놈이 성 낸다’는 순 우리말 속담이 자주 쓰이는 세태가 그를 잘 말해준다.

이 도적놈의 ‘적’을 우리는 가끔 원수 또는 싸움의 상대를 일컫는 ‘적(敵)’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다른 새김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도적의 ‘적’은 비슷한 새김의 한자가 꽤 많다. 우선 도적질은 물론이고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은 ‘비(匪)’라고 적는다. 이 두 글자를 합성하면 ‘비적(匪賊)’이다. 19세기 말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의 사람들에게 행패를 일삼던 사람들이 ‘마적(馬賊)’인데, 원래는 ‘말을 훔치는 도둑’이었다가 나중에 ‘말을 타고 다니는 도적놈’이라는 뜻도 얻었다. 그 활동범위가 행적이 드문 산이라면 그 도적은 산적(山賊)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거주지 인근에서 활동하는 그런 강도와 도적들을 ‘土匪(t? f?i)’로 적는다. 아주 널리 쓰는 단어다. 산에서 활동하는 도적, 즉 산적은 ‘山匪’, 호수에서 노략질을 하면 ‘湖匪’라고 적는다. 어엿한 군대의 병사였다가 도적질로 직업을 바꾸면 ‘兵匪’로 적는다.

고려와 조선의 해안가를 침범했던 일본인을 우리는 왜구(倭寇)라고 부른다. 일본을 낮춰 부르는 ‘왜’라는 글자에 ‘도적놈’을 뜻하는 ‘寇’라는 한자를 붙여 만든 단어다. 이 글자 역시 강도짓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구적(寇賊)이라는 한자 단어가 그래서 나왔다.

도둑놈 심보-. 참 못 됐다. 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계속 도적질 하는 ‘넘’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오히려 큰 소리까지 친다면 물리적인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 남북회담에 응하는 척 하다가 생트집으로 그를 무산시킨 북한, 제 잘못 모르고 한국에 큰소리 치고 있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적반하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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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풀이]

?(도적 적): 물건 등을 훔치는 도적을 가리킨다. ‘적심(賊心)’이라는 한자 단어가 있다. 중국어에서도 널리 쓰인다. 도적놈 마음이다. 온당치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도둑이 물건 훔치듯 기회만을 노리는 그런 마음이다.

(멜 하): 사실은 ‘연꽃’이라는 뜻으로 더욱 많이 쓰이는 한자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손에 쥐거나 어깨에 메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주로 한국과 일본의 한자 쓰임새다. 수하물(手荷物)이 그런 경우다. 손으로 드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부하(負荷)는 물건 등을 짊어졌을 때의 압력을 가리킨다. ‘부하가 많이 걸렸다’고 할 때 잘 쓴다.

(아닐 비): 원래의 뜻은 물건을 담는 그릇. 그러나 부정(否定)을 뜻하는 ‘비(非)’와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부정적인 행위’를 지칭하는 글자로까지 발전한 모양이다. 중국에서는 도적이나 깡패 등을 가리킬 때 매우 자주 쓰인다.

(왜국 왜): 과거 한반도와 중국에서 일본을 부를 때 썼던 글자. 왜구(倭寇)가 대표적이다. 일본 검을 왜검(倭劍)으로 불렀으며, 일본인을 비칭할 때 왜노(倭奴)라고도 적었다.

[중국어]

?-賊(?)zei: 도적에 관한 통칭이다. 나라와 백성에 해를 끼치는 사람. 부정당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 등도 가리킨다. 국가를 망치는 도적은 ‘國賊’,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는 ‘賣國賊’이다.

賊巢(?巢)?zei chao 도적의 소굴

賊(?)溜溜?zei li?li? 불안한 듯 사방을 자주 둘러보며, 행동거지가 수상한 사람의 모습

?????zei tou zei n?o 위와 같은 뜻

?眉溜眼?zei mei li? y?n 아주 교활한 사람의 모습

?心?zei x?n 나쁜 마음, 사념(邪念). (賊心不死:못된 마음 접지 않고 꾸준히 기회를 노리 는 사람, 또는 그 행위)

匪f?i: 아닐 비(非), 도적 비. 한국의 용례보다 훨씬 풍부하다. 주로 산간의 도적 등을 가리킨다. 특히 과거 중국에서 거의 일상화했던 도적 행위의 주체들을 지칭할 때 많이 쓴다.

土匪?t? f?i 과거 중국 왕조 시대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민간사회의 도 적들을 가리킨다.

匪幇(?)?f?i b?ng 도적들의 집단

匪巢?f?i chao 도적 소굴

匪??f?i dao 도적이나 강도

匪夷所思?f?i yi su? s? 생각이나 행동 등이 매우 이상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상. 자주 쓰이는 성어다.

?kou: 역시 도적의 뜻. 침략자, 또는 적군(敵軍)을 지칭할 수도 있다.

寇仇?kou chou 원수, 적군

倭寇?w? kou 왜구


leekwan유광종 책밭 대표는 기자 생활 22년의 전(前) 언론인이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비롯해 국제와 산업,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부문을 거쳤다. 주력 분야는 ‘중국’이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뒤 홍콩에서 중국 고대 문자학을 연구했다. 대만의 타이베이, 중국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해 중국 권역에서 생활한 기간은 모두 12년이다. 중앙일보 인기 칼럼 ‘분수대’를 3년 2개월 집필했고, ‘한자로 보는 세상’도 1년 동안 썼다. 저서로는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 [장강의 뒷물결]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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