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의 스마트에이징 : 가족과 함께 살면 행복할까? 4부]
“용돈 많이 드리고, 부모님 댁 찾아 뵙고”
요즘 아이들에게 앞으로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자주 듣는 답변이다. 결국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애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요즘 30,40대 젊은이 중에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11년 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가족실태조사’에서‘다음 중 귀하가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 포함되는 사람을 모두 골라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77.5%만‘부모’를 골랐다. 응답자 넷 중 한 명은 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셈이다. 통상 가족이라고 하면 부부를 중심으로 한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핵가족화로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부모 자식 관계가 소원해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담스럽기는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자녀와 함께 살며 부딪히는 소소한 갈등이 싫다. 그래서 자식과 같이 살며 볼썽 사나운 꼴을 보느니 차라리 떨어져 사는 게 속 편하다고 하는 부모도 많다. 그렇다고 부모?자식간의 정마저 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식과 매일 얼굴 맞대고 살며 부딪히는 갈등이 싫은 것이지, 사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따뜻하다. 자녀들도 돈이 문제지 부모님이 귀찮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모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고, 자녀 역시 맞벌이를 할 경우 가까이서 육아와 가사에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출현시켰다.
과거 1980년대엔‘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1986년부터 8년간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서로 다른 계층의 세 가족이 펼치는 가족애를 그려 인기를 끌었다. 당시만 해도 절대적으로 주택이 부족해 한 집에 주인과 함께 두 세 가구가 세 들어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니라‘딴 지붕 한 가족’ 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다. 부모 자식이 한 집에 살지 않지만, 도보나 차량으로 10~15분 거리에 살면서 서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가족에 대한 의식 변화는 지난해 말 서울시 조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서울시가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노후에 희망하는 자녀와의 동거 형태’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민 10명 중 5명은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는‘자녀들과 가까운 독립된 공간에서 자녀와 따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자녀와 같이 살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살기도 싫은 것이다.
2011년 세상을 떠난 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 선생님께서도 함께 살기를 청하는 딸들에게 “같이 사는 건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많고, 나는 자유를 즐기는 데 자유를 뺏기는 것도 그렇다”고 하시며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에서 자식이 살아 준다면 그게 좋겠다”고 하셨다. 이 정도 거리면 자녀와 일상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상의 갈등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이런 생각은 1991년 남편과 아들과 사별한 다음 쓴 그녀의 자전 에세이 에서 “다행히 남은 자식들이 수프가 식지 않을 만한 이웃에서 돌봐주고 걱정해 주어 힘이 된다”면서,“무엇보다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혹여‘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라는 말이 자식들에게 가끔 이라도 따뜻한 음식을 날라야 할 부담을 줄까 꺼려‘불빛을 볼 수 있는 거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단편소설‘촛불 밝힌 식탁 ’에서 잘 나타난다.
마누라는 그런 소리를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가 따로 사는 부모 자식간의 이상적인 거리라고 좋아했다. 나는 마누라에게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왜냐하면 며느리가 가끔이라도 따뜻한 음식을 해 날라야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기에 알맞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라는 말을 썼다.
“나도 폐 될까 지척에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늙은이 일은 모르는 일, 더군다나 우리 두 늙은이 중 하나가 죽으면 너희가 부담을 안 느낄래야 안 느낄 수 없게 될 터. 매일 문안은 못할지언정 불빛이라도 오늘도 저 늙은이들이 살아 있구나 확인하고픈 게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냐. 우리도 너희 집 창문에 불이 켜지면 내 새끼들이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편안히 잠자리에 들게 아니냐. 서로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산다는 것, 바쁜 자식과 할 일 없는 늙은이끼리 이보다 더 좋은 소통 방법이 없을 것 같구나.”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는 이 같이 가까운 곳에 떨어져 사는 부모와 자녀를 ‘보이지 않는 가족'(Invisible Family)이라는 말로 묶어 놨다. 떨어져 살기 때문에 한 지붕 아래에서는 볼 수 없지만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보살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족형태의 변화가 새로운 소비행태와 주거형태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승용차보다는 미니밴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부모와 함께 쇼핑하거나 여가를 즐길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용품이나 식료품을 구매할 때도 대량으로 구매한 다음 부모 자식간에 나눠 쓰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의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족이 한 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주택도 소형주택이 인기가 있을 것이고, 가구 역시 소형가구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들이 어디에 모여 살 것인가도 문제다. 요즘은 기껏해야 자식을 하나, 둘 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면 고향에는 노부부만 남게 된다. 이런 경우 자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부모가 고향 집과 땅을 처분하고 도시에 경제활동 기반을 가지고 있는 자녀 곁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도시를 근거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삶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지금처럼 도시에서 살 가능성이 크다.
김동엽님 이사(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는 은퇴설계 전문가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 FP센터, 미래에셋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장과 투자교육 팀장, 한국FP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2012년 은퇴 및 투자 관련 교육에 주력한 공을 인정받아 금융감독원장 표창을 받았다. ≪주간동아≫에‘김동엽의 은퇴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했으며, EBS≪성공! 인생 후반전≫, CBS≪좋은 아침≫, SBS CNBC≪경제 포커스≫, 채널A≪경제특급≫등 경제 전문 프로그램에서 재테크 및 경제 상식을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적립식 투자 성공 전략》,《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경제학》(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