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형기자 ten@koreanjournal.net]
금융위원회가 소비자의 편리를 명분으로 은행 복합점포에서 보험을 판매하도록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소비자원(www.fica.kr, 대표 조남희, 이하 ‘금소원’)은 “금융위 정책은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소비자를 멍들게 하고 시장 혼란을 초래하는 정책으로, 금융산업적 측면에서도 득보다 실이 많아 추진해서는 안되며, 이와 관련한 금융업권간 밥그릇 싸움 대신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겉으로는 소비자 편리를 내세워 은행 복합점포의 보험판매가 소비자에게 득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에게 편리가 아닌 독(毒)이 되어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데도, 금융위가 보험사 밥그릇을 은행에 넘겨서 은행 살리기를 앞장서서 추진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은행들의 수익기반이 약화되자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도와주기 위해 금융위는 시급한 현안은 제쳐두고 중요하지도 않은 복합점포를 신속히 추진하려 하고 있다.
금융위 주장을 소비자 입장에서 살펴 보면, 허구이고 설득력이 없다.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금융소비자에게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에 추진돼서는 안 된다.
첫째, 보험은 은행 가는 길에 즉석에서 편리하게 가입하는 상품이 아니다. 보험은 장기상품이고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 가입하기 전에 충분히 따져 보고 신중하게 가입해야 하는 삼고초려 상품이다. 보험은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사전에 보험모집인과 수 차례 면담을 통해 가족상황(연령, 직업, 재산, 건강, 수입과 지출 등)을 고려해서 장기적 필요 자금을 파악하고 보장 니즈를 확인한 후, 목적에 적합한 보험을 선정해서 상품내용을 제대로 알고 가입해야 한다. 보험은 편리하게 가입할수록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높아지므로, 금융위가 편리성을 내세워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것은 오히려 불완전판매를 조장하는 것이다. 즉석에서 가입하는 TV홈쇼핑 보험이 왜 불완전판매율이 높은지, 나아가 금융 민원 중 보험 민원이 왜 56%로 가장 많은지 생각해 보면 자명하다. 보험은 즉석에서 얼렁뚱땅 판매하거나 가입하는 상품이 아니다.
둘째, 보험은 저축이 아니므로 은행 창구에서 예·적금이나 증권 투자상품과 수익률을 비교해서 즉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보험은 본질적으로 보장이므로 은행 저축이나 증권 투자상품과 동일한 개념으로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금융위와 일부 연구기관이 “새로운 판매 채널이 도입되면 소비자가 같은 장소에서 따져보고 비교해 볼 수 있어 이익이고,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된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의 본질을 모르고 저축으로 왜곡하여 소비자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보험 대신 은행에 유리한 보험만 판매하게 되므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보험은 사전에 생활설계를 통해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보험을 선정, 판매해야 하는데, 현행 방카슈랑스에서 보듯이 은행이 고객 니즈보다 수수료가 많은 보험을 우선 판매할 것이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방카슈랑스를 놔 둔 채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도도 더더욱 아니다.
*방카슈랑스는 보험 판매 수수료를 낮춰, 소비자가 저렴한 보험료를 내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2003년 도입됐다. 그러나 10년 이상 지난 현재, 당초 취지와 달리 소비자 혜택은 적고 은행들은 매년 수수료 재미를 보고 있어 은행 배만 불려 주는 제도로 변질되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넷째, 은행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금융지주계열 보험사가 입점하여 자사의 보험만 판매하므로 소비자들은 해당 보험사의 상품만 가입하고, 타 보험사의 상품은 가입할 수 없다. 이것은 여러 보험사의 다양한 상품들을 검색, 비교해서 합리적인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복합점포에서 즉석으로 보험을 가입하면 보험료가 저렴하고 보장이 큰 타 보험사의 양질 보험을 가입할 기회를 잃게 되어 뒤늦게 후회할 수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현재 방카슈랑스가 운영되고 있는데, 새로운 판매채널이 도입돼야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다섯째, 금융사의 벽을 허물어 고객을 편리하게 하겠다는 금융위 주장은 금융사의 전문화, 차별화를 역행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이 받아야 할 차별화된 서비스(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유명한 맛집은 한 가지 음식으로 승부를 거는데, 맛 없는 집은 수십 가지 맛 없는 음식만 팔듯이, 금융위가 소비자 편리를 내세워 차별화된 금융사를 키우지 않고, 맛없는 식당으로 획일화하려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금융사를 맛없는 식당으로 획일화하여 소비자가 양질의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 외에도,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소비자가 주인인데, 금융위 및 금융사들이 소비자 피해나 효익은 안중에도 없이 주인행세하며 편을 갈라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어 볼썽 사납다. 이미 은행창구에서 방카슈랑스가 시행되고 있는데 굳이 복합점포를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금융위원장은 각계의 강력한 반대와 국회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강행하는 것은 금융지주에 대한 특혜 논란을 불러온다. 그동안 은행권 중심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융업권의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번 금융위 정책은 부적절해 보인다. “(대면설계사 대량 실직은 도외시한 채) 은행 복합점포의 일자리 창출이니, 보험사 점포가 열악해서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가 필요하다”는 일부 주장은 보험 현장을 전혀 모르는 허구이므로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
금소원 오세헌 국장은 “금융위가 추진하는 은행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소비자의 편리보다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가 더 크고 시장 혼란이 초래되므로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며, “금융위가 소비자 운운하며 설익은 대책을 남발하고 자신들의 권한만 늘릴 것이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건전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여 산적된 현안 문제들을 우선 추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