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코리언저널 전성민 기자 jsm@koreanjouranl.net]

망명자가 속출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다. 나는 장난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망명을 한다니 우리나라가 북한이야 망명을 한다면 어디로 가지, 이왕 하는 망명이라면 캐나다나 뉴질랜드로 하고 싶다.’ 옆에서 오늘도 잔소리를 하는 국장님 없는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불순한 생각을 했다. 국장님 죄송해요!

망명하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엘즈비에타 에팅거)이다. 1924년 18살의 독일계 유대인 아렌트는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해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철학 과목을 수강했다. 당시 하이데거는 35살의 인기 교수였으며 대표작이 된 <존재와 시간>의 집필을 할 정도로 전성기였다. 존경하는 스승 하이데거마저 나치당에 가입해 지지 발언을 하자 독일 지성계에 낙담한 아렌트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말년의 아렌트는 하이데거 를 용서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나치 연루의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도왔고, 그의 책을 미국에 출간하는 일까지 도왔다. 저자는 하이데거가 아렌트를 남자라는 시대의 권력으로 영리하게 여자를 이용했으며 아렌트는 뛰어난 철학자였지만 사랑에 종속된 여자였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아렌트야 사랑에 종속되었다 지만 나는 무엇에 ‘종속’되어서 이 나라에 사는 것일까.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200만을 넘었다고 한다. 나는 망명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IT기자인 나는 부끄럽게도 스마트폰이 없다. 내 폰은 3G폰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각종기능을 전시장에서 습득해서 기사를 쓴다.

왜 없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유는 하나이다. 한국 스마트폰이 너무 비싸서이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서 두 배정도 정도 비싸다. 월세 사는 내 주제에 스마트폰은 사치일 뿐이다. 사실 스마트폰 없이도 세상 사는데 지장은 전혀 없다. 한국 어딜 가도 컴퓨터가 없는 곳이 없다. 미국 일본 중국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같은 곳은 없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망명할 일은 적어도 내게는 없다. 최근 주변의 강력한 요구에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난이 죄이다.

“야 임마 청승 떨지 마 내가 스마트폰 사줄게..” 국장님이 지난 달에 하신 말씀이다. 나의 청승에 이제는 지쳤다는 표정으로 하신 말씀이다. 내심 스마트폰 사줄 것을 기대하던 나는 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이번 달이 다 가고 있는데 소식이 없다. 노골적으로 사달라고 할 수 도 없고 정말 애가 탄다. ‘어머니 집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라고 말하고 보일러 안 놔디리는 며느리를 보는 시어머니 심정이 이해가 갔다. 이 글을 빌어 국장님에게 간곡하게 청하노니 “저도 망명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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