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하락 이벤트로 전락한 결혼

[김동엽의 스마트에이징 : 골드미스가 골병미스 될라! 1부]

불과 얼마 전만해도 30대 여자는‘아줌마’로 통했다. 심할 경우 여자 나이가 스물 다섯을 넘으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해서 크리스마스가 지나 팔리지 않는 케이크에 비유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웃 일본에서는 서른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는 여자를 싸움에서 진 개라는 뜻으로‘마케이누(負け犬)’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상 싸움에서 진 개는 고개 숙인 채 꼬리를 내려뜨리고 상대의 처분만 기다리는 몰골을 하는데,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 못한 노처녀가 마치 다른 여자와의 결혼 경쟁에 밀려나 세상의 처분만 기다리는 싸움에서 진 개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30대 미혼 여성들을 ‘브리짓존스 세대’라고 부른다. 영화‘브리짓존스의 일기’에서 32살 미혼녀 브리짓존스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할 정도로 독신인 채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못했다고 조바심을 내는 여성도 많지 않지만 그녀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드물다. 통계를 살펴봐도 30대 미혼여성비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05년 인구조사 당시 30대 초반(30~34세) 여성 중 미혼 비율은 19%에 불과했지만, 2010년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9%까지 상승했다. 5년 새 그 비율이 10%나 상승한 셈이다. 같은 기간 30대 후반(35~39세) 여성의 미혼율도 7.6%에서 12.6%로 급증했으며 , 현재 상승률을 감안하면 향후 10년 이내에 그 비율이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30대 여성의 미혼율 증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녀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못하는 것일까?

00000000abefe서른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가진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어 주목해 볼만 하다. 결혼은 지금까지 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커다란 이벤트다. 따라서 결혼을 앞둔 사람이 ‘결혼 전 생활’과 ‘결혼 후 예측되는 생활’을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결혼 전과 비교해서 결혼 후 생활수준이 나아질 것 같으면 결혼을 하겠다고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결혼을 주저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1970~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결혼은 일종의 신분상승 이벤트였다. 당시 젊은이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농사를 짓던 부모들은 아직 가난하고 형제수도 많아 주택사정도 나빴다. 이렇게 젊은이들의 결혼 전 생활수준은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결혼한 다음 생활수준이 떨어진다고 해도 별로 잃을게 없었다. 따라서 결혼에 이르는 장애물이 별로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여성들 입장에서 결혼은 가난한 부모 곁을 떠나 고도성장기 산업역군으로 전도유망한 남편에게로 가는 신분상승을 의미했다. 결혼해서 남편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아내는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면, 수입은 점점 늘어나고 풍요로운 생활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고도성장기 젊은이들 중에 결혼이라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결혼은 신분하락 이벤트가 돼 버렸다. 사정이 달라졌다.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여파와 잇단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로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남편감이 될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다. 일용직과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설령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만족할만한 소득을 얻기 어렵다. 반면 지금의 부모세대는 우리나라 고도성장기를 이끌며 부를 축적한 탓에 풍족하다. 게다가 산아제한정책으로 자녀 수도 많지 않아 과거에 비해 양육에 따른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은 자녀에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풍족한 부모 밑에서 자란 여성들 입장에서 결혼은 잘사는 부모 곁을 떠나 장래가 불투명한 남편에게로 가는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이벤트가 돼 버린 것이다. 이른바 ‘결혼은 가난의 시작’이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가난했다면 팍팍한 생활을 견딜 수도 있고 희망도 가질 수 것이다. 그러나 일단 풍요로운 생활을 맛본 젊은이들에게 그렇지 못한 생활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일 수 밖에 없다.

 


때

김동엽 이사(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는 은퇴설계 전문가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 FP센터, 미래에셋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장과 투자교육 팀장, 한국FP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2012년 은퇴 및 투자 관련 교육에 주력한 공을 인정받아 금융감독원장 표창을 받았다. ≪주간동아≫에‘김동엽의 은퇴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했으며, EBS≪성공! 인생 후반전≫, CBS≪좋은 아침≫, SBS CNBC≪경제 포커스≫, 채널A≪경제특급≫등 경제 전문 프로그램에서 재테크 및 경제 상식을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적립식 투자 성공 전략》,《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경제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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