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패러사이트와 유령연금

[김동엽의 스마트에이징 : 가족과 함께 살면 행복할까? 2부]

캥거루족이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중년이 되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하는 자식들이 늘어나면서 ‘패러사이트 중년’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일본총무성에 따르면, 35세에서 44세에 이르는 일본인 6명 중 1명(총300만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가 지적했던 패러사이트싱글 중 상당수가 중년이 돼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에 따르면,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35세 이상미혼자의 평균수입은 1994년 204만 엔에서 2004년 138만 엔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패러사이트 중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모님의 연금을 사이 좋게(?) 나눠 쓴다는 점이다. 이 경우 부모가 받는 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자녀들이 많은데, 이를 두고 ‘연금 패러사이트’라고 부른다.

문제는 부모가 사망한 다음이다. 최근 일본에는 부모가 죽은 다음에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수령한 몰염치한 자녀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2010년 7월말 도쿄의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3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이 사망자의 노령연금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 시신을 집안에 미라 상태로 방치한 채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불법으로 연금을 받아온 81세 딸과 53세 손녀는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 사건을 계기로 76세 이상의 연금 수령자 가운데 지난 1년간 건강보험 이용 사실이 없는 34만 명을 대상으로 소재파악에 나선 결과 572명이 이미 사망했거나 실종됐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은 사망자의 연금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유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고인(故人)연금’또는 ‘유령연금’이라고 한다. 죽은 부모의 연금소득이 산 자녀의 생활자금으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중심에 서 있는 그리스도 유령연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1년 인구조사 당시 그리스에서 100세를 넘은 인구는 1,700명이 채 안 되는데 반해, 같은 기간 그리스 최대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재단(IKA)에서 연금을 수령하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9,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부정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된 연금이 무려 70~80억 유로에 이른다. 80억 유로면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3.5%에 이르는 액수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스가 부도위기에 처하기 전에는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1년 11월 전남에 사는 임모씨는 3년 전 사망한 부친의 국민연금을 계속 받아오다 국민연금공단직원의 현장조사에서 적발된 적 있다. 임씨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지만, 마을주민에게 확인한 결과 2008년 이미 사망한 것을 밝혀졌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07년 이후 5년간 연금수급자가 사망했는데도 신고하지 않고 국민연금을 챙긴 건 수는 무려 1만975건에 이르고 부정 연금수령금액은 47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에서 패러사이트싱글이 중년패러사이트로 진화하면서 유령연금 문제를 낳았듯, 지금 우리나라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그나마 숙주 역할을 하는 부모세대의 연금준비가 잘돼 있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들의 노후준비조차 부실해 삶이 버거운 세대라는 점이다.


때 김동엽은 은퇴설계 전문가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삼성생명 FP센터, 미래에셋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장과 투자교육 팀장, 한국FP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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